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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산마을>7.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귀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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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강 댓글 0건 조회 131,427회 작성일 18-12-2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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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마을 하면 연상되는 것들 가운데 하나가 산채(山菜)다.한상 가득히 오른 갖가지 산채들은 입맛을 돋운다.
험한 산이 많은 강원도에는 유난히 질 좋은 산채가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산마을 사람들은 자기 동네에서 나는 산채를 자랑할 때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도 원통에서 내린천을 따라 70여리 거리에 있는 귀둔리(강원도인제군인제읍)의 산채와 비교할 때는 슬며시 말꼬리를 내린다.
귀둔리의 산채는 한 군(郡)에서 가장 뛰어난 특산물에 붙여주는 「1군1명품」으로 지정될 정도로 유명하다.마을 사람들은 귀둔리 산채가 뛰어난 것을 마을 어귀에서 바라보이는 점봉산(1,424)덕으로 돌린다.
점봉산은 대청봉에서 한계령으로 고개를 떨구듯 낮아졌던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갑자기 용틀임치 듯 솟아오른 곳이다.마치 산의 정기를 꼭꼭 숨겨놓았다가 갑자기 터뜨린 것 같다.그러다 보니 점봉산 정기를 받은 산채가 맛있고 좋은 것은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귀둔리 사람들은 날씨가 풀리는 3월이 되면 산채를 캐기 위해 바빠진다.
이 때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거의 대부분 점봉산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귀둔리에서는 해발 1천이상에서 나는 고랭지 나물만 취급하기 때문에 귀둔리 사람들은 이맘때면 거의 산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산채사냥」의 첫 목표는 얼레지다.나물은 물론 약재로도 쓰이는 얼레지는 아직 눈이 남아있는 나무그늘에서 함초롬히 솟아 꺾어줄 주인을 기다린다.얼레지의 뒤를 잇는 나물이 참나물류의 생채다.이어 두릅.고사리.취나물.더덕취.전육취.곰취 .노루대.맹이 등이 5월말까지 쏟아져 나온다.
6월 이후에도 산나물이 나지만 질이 떨어져 취급하지 않는다.
이들이 봄에 캐는 산나물은 하루 5백관(1관=3.75㎏)을 웃돈다. 재미있는 것은 점봉산에서 산채를 따는 사람들은 다른 동네에서 온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점봉산 산채가 좋다는 말을 듣고 외지에서 「이 때」를 노리고 몰려오는 것이다.
점봉산 산채는 「하늘아래 산나물」이란 이름으로 판매된다.산나물 여섯 종류가 들어가는데 얼레지.고사리.곰취.취나물.고비.전육취 등이다.
점봉산 취나물을 먹어본 사람들은 산에서 자란 취와 재배한 취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귀둔1리 이장 배복영(48)씨는 『야생취는 산속의 유기질을 많이 먹어서 대궁이 굵고 붉으며 잎사귀가 넓다』고 귀띔했다.무엇보다 향이 뛰어나다고 한 다.
3월에서 5월까지 3개월동안 캔 산나물은 귀둔리 사람들의 주수입원이 된다.생채는 곧 판매하고 나머지 나물들은 건조시켜 겨울 때까지 포장해 판매한다.마을어귀에 있는 「점봉산 산채 가공판매장」은 그래서 귀둔리 사람들의 희망이 집약된 곳이다.마을사람들은 올해부터 이 판매장에서 산채를 가공해 수요자에게 직접 출하할 꿈에 부풀어 있다.이장댁((0365)461-4691).

  볼거리 먹거리
귀둔리의 볼거리라면 단연 점봉산과 필례약수터를 꼽을 수 있다.오색약수를 사이에 두고 대청봉과 남북으로 대치하고 있는 점봉산은 산행지로 유명하다.「봄에 들어가면 가을에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세가 빼어나고 계곡이 아름답다.특히 점봉산 주전골 계곡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귀둔1리에 있는 필례약수터는 1930년께 이 지방 주민이 발견했다.피부병과 위장병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설악산국립공원 봉우리들에 둘러싸인 분지로 이루어져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6㎞에 이르는 군량천 계곡물이 맑고 시원해 여유가 있는 사람은 며칠을 묵어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곳이다.「필례」란 이름은 난리 때 사람들이 몰리는 피난처란 뜻이다.
귀둔리의 음식점은 막국수로 유명한 솔밭집((0365)461-6664)을 권할만 하다.이 집에서 파는 막국수는 직접 농사를 지은 메밀을 재료로 하는데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새콤한 것이 특징이다.한 접시에 6천원 하는 편육을 주문하면 촌두부를 무료로 준다.이 집에서 파는 메밀전은 술안주로도 일품이다.

  <산사람>호림부대 출신 황극성씨
이태가 쓴 『남부군』에는 빨치산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빨치산들은 눈덮인 지리산에서 동에 번쩍,서에 번쩍 하며 하룻 저녁에 산길 1백여리를 내달리곤 한다.
그러나 빨치산만 그랬던 것은 아니다.남한의 호림부대 대원들이 역시 그랬다.
호림부대는 해방이후 북한에서 내려온 젊은이들로 이루어졌던 서북청년단이 와해되면서 다시 구성된 부대다.아마 그들은 산 타는 기술이 능숙한 산악인들과 비교해 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귀둔1리에 사는 황극성(64)씨는 호림부대 대원이었다.
귀둔리가 고향이었던 황씨는 1949년 귀둔리 앞 화채봉을 경계로 나있던 38선을 넘었다.사상문제로 해방 후 북한당국의 박해를 받은 것이 월남 이유였다.당시 귀둔리는 북한에 속해 있었다.월남 후 그는 서북청년단에 들어간다.
서북청년단이 해체되고 다시 조직된 것이 호림부대였다.호림부대는 곧잘 군작전의 일환으로 38선을 넘는 경우가 많았다.그럴 때면 하룻 저녁에 산을 70~80리씩 타는 것은 예사였고,급하면1백여리 이상도 마다하지 않았다.하룻 저녁에 점봉 산에서 향로봉까지 가기도 했다.
『당시에 부식인들 제대로 있었겠어.칡이나 감자도 캐먹고 정 배고플 땐 뱀도 잡아먹었지.그러면서도 산길 1백여리를 예사로 다녔어.거의 산짐승이나 진배없었지.』 그는 호림부대에서 나온 뒤귀둔리 옆마을 현리에 있었는데 6.25때 미처 후퇴하지 못했다.그래서 「방태산 결사대」를 만들었다.이 결사대는 한창때 대원이 7백여명까지 되었다.그는 이 결사대에서 7중대장을 했다.
그는 59년 제대한 후 60년 귀둔리에 정착했다.산채 재배 등 여러가지 일을 해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결혼도 했지만 실패하고 현재 혼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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